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예 훈장 (문단 편집) == 수여자 == || [youtube(E-MlPpZo0j8)] || || 수여식 영상 || 1968년 9월 데이비드 맥너니 중사 외 네 명의 군인이 베트남 전에서의 무공으로 명예 훈장을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수여받고 있는 영상이다. 원칙적으로는 공을 세우거나 전사한 뒤 2년 내에 대통령에게 소식을 알리고 3년 내에 수훈되도록 하고 있지만, 시체조차 찾지 못한 전사자들이나 부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으면서 고군분투했던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흘러서야 훈장을 받은 이들도 많다. 또한 공적을 최대한 정확히 파악하여 수훈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아직도 [[제2차 세계 대전]]이나 [[6.25 전쟁]]에서의 영웅적 활약을 기려 명예 훈장이 수훈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 경우 수훈 당사자가 살아있을 확률은 거의 없으므로[* 애초에 수여자 중 다수는 수여자로 결정되기 전 이미 전사한 경우가 많다.] 그 가족이 대리로 수여받는다. 총 3465번 수훈되었으며 수여자는 3446명이다. 19명이 2중 수훈을 받았다는 뜻으로, 이 중 5명은 같은 행동으로 서로 다른 군의 명예 훈장을 중복 수여받았고 나머지 14명은 다른 행동으로 두 번 수여받았다. 육군이 가장 많은 수여자를 배출했고 해안 경비대는 1명의 수여자를 배출한 것이 전부이다.[* 1943년 5월 27일 더글라스 먼로 신호중사가 [[과달카날 전역|과달카날 전투]]에서의 활동으로 훈장을 받았던 것이 해안 경비대의 유일한 수훈 사례이다.] 아무래도 해안 경비대는 영해에서 해안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해외에 파병되더라도 전투 임무는 해군이 맡고, 해안 경비대는 비전투 임무를 수행하기에 이런 훈장을 받을 정도로 험한 일은 드물다. 만약 [[미합중국 해안경비대|해안 경비대]]나 주립 [[민병대]]가 몇십 명씩 무더기로 명예 훈장 받을 일이 있다면 그건 분명 '''[[진주만 공습|미국 본토가]] [[제3차 세계 대전|공격받는 상황]]'''일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